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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명고37화는 전반적으로 호동의 속내가 드러나는 전개였다. 그간 낙랑뿐 아니라 고구려까지 감쪽같이 속여온 호동의 사기극이 끝을 맺게 된 것이다. 혹자는 자명고 시스템을 희대의 사기극이라 했지만 본인의 경우 자명고보다는 호동의 계획이 훨씬 더 기막힌 사기극이었다고 본다. 자명고의 사기극은 결국 낙랑을 지키지 못했지만 호동의 사기극은 고구려가 낙랑을 정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호동의 사기극이 보기좋게 성공하기까지는 고구려의 대왕 대무신폐하께서도 크게 한 몫하셨다. 특히나 37화에서 보여준 명 연기는 남우주연상 감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됬든, 자명고 37회는 자명이 호동의 계략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잡으면서 시작한다. 3년이란 시간동안 공을 들인만큼 한반도 전체가 호동의 연기에 꼴딱 속아넘어갈 때 유일하게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이가 있었으니, 바로 뿌쿠였다. 아무리 호동이 완벽한 계획과 완벽한 연기를 펼친다고 해도 뿌쿠는 호동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결코 만만히 속아줄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호동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알고도 아닌척 은근히 넘어가줄 수 밖에 없는 뿌쿠이다.

    그랬기에 자명고를 찟으라는 무휼의 쪽지를 직접 보고도 호동이 솔직해 주길 바라며, 호동의 마음은 무휼과는 별개로 낙랑을 위한 왕자가 되어주리라는 믿음으로 모른척 물어본다.


    하지만 호동은 뿌쿠의 기대와는 달리 엄한말만 해댄다. 쪽지의 내용을 뿌쿠가 봤으면 어떻게 해야하나에 대한 고민도 잠시,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뿌쿠에 말에 능청스럽게 거짓을 말하는 호동이었다. 뿌쿠를 너무 쉽게 본 것이다.
    라희에게 늘 그래왔듯이 능청스럽게 아버지와 아들이란 철륜을 핑계로 그럴듯하게 꾸며대보지만 눈가리고 아웅 수준의 거짓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뿌쿠는 그 짧은 순간에 냉정을 되찾고 보란듯이 거짓말을 해대는 호동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저 조금이나마 믿었던 것에 대한 배신감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에 뿌쿠는, 아니 낙랑국의 공주이자 신녀인 자명은 호동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자명)
    그토록 낙랑이 갖고 싶으신가요?
    대무신왕과 짜고 낙랑국 백성을 다 속일 만큼,
    혼인 첫날밤 신부를 속이고 자명고를 찟으려 했습니까?
    성겸전으로 가져가겠어요

    순간, 진지한 부분에서 '대무신왕과 짜고' 라는 대사에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아무리 퓨전 사극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의 사극이네 신녀님씩이나 되는 분이 화가난다고 해서 짜고치는 고스톱아니냐는 이런 풍으로 호동을 다그치는 모습이 예전 저작거리에서 희희낙락 기예단을 하던 뿌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쨋든, 호동의 마음이 분명하진 지금, 더 이상 뿌쿠의 마음으로 눈감아 줄 수 없기에 성겸전으로 가겠다는 자명이다.

    이에 질 수 없는 호동도 세게 밀어붙인다.

    (호동)
    아니, 넌 날 두번이나 죽이려 했었다
    왕홀에게 나를 던졌고, 망명을 요청했을때도,
    남의손 빌릴것 없다. 네 손으로 해라, 뿌쿠 네 손으로


    뿌쿠라면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뽑아든 비장의 카드같아 보였다. 아무리 낙랑을 끔찍이 사랑하는 신녀인척 하더라도 호동의 눈에는 그저 먹는것을 좋아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뿌쿠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달랐다.
    호동의 앞에 서있는 그녀는 호동의 여자 뿌쿠가 아닌 자명이었기에 기꺼이 호동에게 검을 대는 그녀이다.

    (자명)
    당신과 나 이건 이미 예정된 길이었어
    피하지 않겠어요

    (호동)
    어째서 낙랑이 그토록 소중해 진거냐,
    어째서 널 싫어하는 태녀를 사랑해야 하는 거냐
    대답해, 대답해, 이유를 알 수 없어 졸본에서부터 숨이 막혀 죽을것만 같았다
    대답하라니까

    (자명)
    내 언니니까,
    라희는 내 언니니까, 내가 원후마마딸 자명이니까
    내 아버지가 낙랑국의 왕이니까
    당신의 뿌쿠로 살 수 없는 이유, 이제는 알겠나요?

    (호동)
    니가 내 처제라고? 이런 무슨, 이런 무슨 개같은 경우가!
    내가 낙랑을 갖고 싶은건 고구려 왕이 되고픈것도 있지만 넌 내 현실로 데려오려는 거다

    (자명)
    그대의 현실은 라희공주죠, 내가 될 수 없어요
    당신의 뿌쿠는 없어, 난 낙랑국의 자명이에요

    (호동)
    그래 자명아, 니가 낙랑국의 공주라, 라희의 동생이라 낙랑국과는 더 친해질 수 없겠구나
    낙랑을 부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널 내게 보내지 않을테니

    지난 3년간 그토록 호동을 괴롭히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유도 모른채 떠나버린 사랑때문에 아파하던 호동은 그 고통이 너무 커서 이유를 알아야만 했지만, 이유를 안 순간 호동은 더 아파야만 했다. 운명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간 호동이 뿌쿠에게 사랑을 떼쓸 수 있었던 이유는 이토록 잔혹한 운명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잔혹한 운명을 알게된 호동이 할 수 있는건 또한 실없이 웃는것 밖에 없었다. 호동이 듣고 싶던 대답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차마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현실은 호동을 돌아서게 한다. 다시한번 낙랑을 반드시 쳐부시고 말겠다는 결심과 함께 말이다. 이제 호동은 무서울 것도 고민할 것도 없게되었다. 그동안 혹시나 뿌쿠가 왕홀에게 마음이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걱정과 답답함들이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다.
    호동은 태어날때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운명의 수레바퀴속에 편한적이 없으니, 자명과의 엉켜버린 운명이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이미 참혹해질대로 참혹해진 호동의 운명 속에 뿌쿠 역시 그 일부일 뿐이니 그동안 해왔던 것 처럼 꿋꿋이 밀고나가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자명의 마음은 분명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한 호동은 낙랑정벌에 있어 더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어진 셈이다.


    같은시각, 라희 또한 비참한 운명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토록 바래왔던 호동과의 혼인 첫날밤, 난데없이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에, 그 소리를 듣고 신녀에게로 쪼르르 달려나가는 호동의 모습에 찟길대로 찟긴 자존심이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것이다. 다 가졌기에, 호동까지도 가져야만 하는 라희였기 때문이다.

    분에 못이겨 검을 들고 나선 라희의 앞을 막아서는 한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왕홀 대장군이다. 이런 라희의 자존심은 왕홀대장군에 의해 또 한번 밟히게 된다.


    (왕홀)
    그 검은 호동을 향한 검입니까 신녀님을 향한 검입니까

    (라희)
    낙랑의 신녀라 요망한 말을 하면서 그것도 신혼 첫날밤에 사내나 불러내는 천박한 계집을 벨 것이오

    (왕홀)
    그렇다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라희)
    왜죠? 어째서? 신녀님이 내 동생 자명이라서?

    (왕홀)
    알고계셨으면서 어찌 칼을 들고 동생을 찾으십니까

    (라희)
    동생이니까 자명이니까
    동생의 피를 칼에 묻히는 폐륜이라도 난 그아이를 용서할 수 없어요

    (왕홀)
    모두가 마마만 사랑하고 마마만 바라보고 그리 다 가지셔야만 합니까
    그저 참고 바라보는 사랑은 할 수 없는 겁니까
    왜 신녀님께서는 태녀마마께 뭐든걸 다 양보해야 하는 겁니까
    호동이 그녈 사랑한게 왜 자명공주 죄입니까

    자명에 대한 라희의 분노가 한낱 질투에 불과하다는걸 콕찝에 지적해주는 왕홀 대장군이다. 라희는 그간 자명을 미워하는 이유로서 신녀의 명분으로 국정에 개입하는 파렴치한 자명임을 내세웠었다. 즉 표면적으로는 근본도 모르는 자명을 나라의 신녀로 세워 낙랑국 전체가 신녀의 말에따라 움직이게된 비 논리적인 상황에 대한 불복종으로 포장해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라희가 자명을 미워하는 진짜 이유는 호동이 자명을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뭐든 갖고싶은 것은 갖여야 했던 라희인데 가장 가지고 싶었던 호동을 가질 수 없는 이유가 자명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왕홀의 말에 라희는 처참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호동이 자명을 사랑한것은 자명의 잘못이아니었다. 자명 역시 호동을 사랑했지만 최선을 다해 참아왔던 그녀이기에 정작 라희가 미워하고 원망해야할 상대는 호동이었다. 물론 라희도 알고 있었지만 호동을 미워할 수 없기에 그 핑계로서 자명을 미워한 숨겨왔던 자신의 이기심을 왕홀에 의해 마주하게 된 것이다.


    (라희)
    망할 계집이로군, 망할 계집이 복도 많군

    (왕홀)
    신녀님께서 호동왕자에게 이런말을 했지요
    호동왕자를 마음에 저울로 달아보니 태산처럼 무겁다고
    원후마마 폐하 낙랑국, 낙랑의 백성을 모두 달아도 호동보다는 가벼운데
    그 무거운 호동을 택할 수 없는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그 마음 이해해고 그냥 돌아가시지요
    왕자님, 태녀마마, 어쩜 나까지도 모두 딱한 사람들이겠지만
    자명 공주님 만큼은 아닐테니, 그냥 돌아가시지요

    (라희)
    자명이를 세번 용서해주기로 약속했죠.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다음은 없어요, 다시한번 내 자존심을 찟는다면 그 아인 죽어요

    늘 든든한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 왕홀대장군 마져 자명을 감싸고 나서니 그런 왕홀이 야속하기도, 억울하기도한 라희다. 또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자신의 속내를 샅샅이 들춰내는 외삼촌이 미울뿐이다.
    결국 이내 웃고 마는 라희, 지난날 자명을 세번 용서해주기로 했다는 핑계로 돌아서고 만다. 아마도 처음 자명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그날 라희가 세번씩이나 용서의 기회를 준 것은 호동과 뿌쿠가 쉽게 헤어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라희 스스로도 그 둘의 사랑을 부정할 수 없기에 3번이라는 유효분을 줄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이런 라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침소로 돌아온 호동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술잔만 기울인다. 반면 호동의 마음을 알기에 괴로운 라희 역시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하염없이 호동만을 바라본다. 자명 역시 같은 시각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니 한껏 자기 속내를 털어내고 가버린 호동왕자 때문이다. 온전한 신녀가 못되었기에 태산보다 무거운 호동을 마음에 담은 뿌쿠가 결국 무휼의 쪽지를 태우고 만다. 자신의 손으로 호동을 죽여야하는 운명임을 알면서도 그 운명은 자명의 것이지 뿌쿠의 것이 아니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이렇게 모두가 아픈 밤이 지나고 어김없이 아침은 밝아온다. 이미 마음의 결정이 끝난 호동은 본격적인 낙랑침공을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아침부터 뾰로퉁해진 라희를 다루는 것부터 말이다.

    (라희)
    난 나눠가지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하나듯 낙랑국 태녀자리도 하나고 당신도 하나에요
    그 중 어떤 것도 뿌쿠와 나눠가질 수 없어요

    (호동)
    내가 신당에 간것은...

    (라희)
    하지마! 들으면 들을 수록 의심만 하게되,
    진실일까 거짓일까 하루종일 그생각만 할 수록 미쳐버릴것 같단 말이야


    정말이지 극이 진행되는 내내 느낀것이지만 호동은 시대를 막론하고 최고의 '작업남'이자 최고의 '사기꾼'이지 싶다. 매 순간 자신의 목적을위해 철저히 계산되어 움직이며 그 어떤 말로도 여심을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세치혀로 세상을 주무르듯 낙랑국을, 낙랑국 태녀를 집어삼키는 저력이야말로 무서운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호동)
    사랑이 끝나도 그 보다 더 오래가는 게 있더구나,
    사랑했던 습관, 사랑했던 기억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그치만 그 습관 그 기억,
    그걸 지우는덴 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라희야, 넌 내 첫 여자고 내 아내다
    밖에서 기다리마 준비하고 나오거라

    (라희)
    더는 내 자존심을 찟지마, 당신이 미워지는게 아니라 뿌쿠가 미워지니까

    단 한순간도 지지 않는 말발의 달인이다. 여자에게 있어 '처음'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까지 정확히 꿰뚫고 있는 호동이다.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라희에게 자신의 행동은 지나간 과거일 뿐이며 현재는 라희임을 되새겨 준다. 잊지않고 박력있게 안아주기까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정도로 완벽한 작업의 정석이다.


    지난날 호동을 생각해 보면 라희의 추궁에 불리해질때마다 교묘하게 스킨쉽을 사용해오던 호동이었다. 불리한 말이 나올때면 입맞춤으로 라희의 입을 막아버리는가 하면 온몸으로 화를내는 라희를 꽉 껴안아 주며 능수능란하게 진정시켜주기 일수이다.
    이런 작업에 정석에 늘 성실히 넘어가주는 라희공주를 보면 한참 철없는 사랑이 이런거구나 싶을때가 많다. 머리로는 아님을 알면서도 그저 마음가는대로만 행동하는 라희의 사랑은 어린아이일때나 귀엽게 봐 줄 수 있는 순수함이 짙은 사랑이라 하겠다.


    어쨋든 이로서 호동이 낙랑을 치기위한 준비는 모두 끝이난다.

    극이 종방을 향해 달려갈 수록 그동안 실태래처럼 엉킨 인물들의 속내가 깊게 베어나기에 하루 방송분을 한번에 다 포스팅하기 너무 길어서 두개로 나눠서 할까 한다.
    37화의 1부라고 할 수 있는 본 포스팅은 호동이 낙랑을 치기 직전까지 네사람의 심리를 중점으로 다뤘다. 이제야 속내를 드러내는 비열한 왕자 호동에대한 이야기는 2부로 이어진다.



    잠시 딴소리)

    어제 컴퓨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윈도우를 무려 5번이나 다시 깔았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밤을 샜다죠...ㅠㅠ
    그래서 자명고 37화의 포스팅이 한참 늦어졌네요..... 몇분 안되지만 그래도 제 리뷰를 기다려주신 분이 계시기에 밤을 새고도 부지런히 올려봅니다~!
    오늘 리뷰도 재밌게 봐주시구 응원, 공감, 비판의 댓글들 부탁드려요~!


    [37화의 2부 :: 비열한 호동왕자 이야기]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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