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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의 분노가 채 식기도 전에 33화가 시작되었고, 이번 화는 호동의 망명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본격적인 '신녀 자명'의 정치적 개입 또한 시작 되었으니, 1, 2화때 보였던 결말로 점점 다가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워낙 32화가 무 잘라먹듯 뚝뚝 끊어졌었기에 이때 벌은 시간으로, 33화는 어느정도 원래 페이스로 돌아온 듯 보였다.


    호동은 졸본성으로 유폐되어 2년이란 시간을 죽은듯이 보냈지만, 호동이 키운 군사들은 반역의 군사들로 몰리게 되고, 결국 그 다음 수로 택한 것이 낙랑으로의 망명이었다. 이미 각오했던 일이었겠지만, 무휼의 마음은 점점 해애우에게로 기울고 있었다. 무휼은 2년전 졸본으로 가서 졸본의 군사들과 낙랑을 가져다 바치겠다는 호동의 결의를 잊으셨는지, 나이가 들어 의심이 많아진 것인지 여러모로 호동을 탐탁치 않아한다.
    덕분에 점점 더 혼자가 되어버리는 호동, 낙랑까지 가서 직접 첩자가 되려 하지만 그것 역시 만만치만은 않았다. 호동만큼이나 무술도, 지혜도 뛰어난 왕홀 대장군의 눈을 속이기가 쉬울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2년간 분명해진 것은 더 이상 호동이 뿌쿠(자명)에 대한 이야기에 쉽게 동요되거나 흔들릴만큼 순진하지 않다는 것이다.


    뿌쿠아가씨는 왕홀의 아내가 아니라는 말에도 안색하나, 눈썹하나 꿈틀하지 않고 태연하게 받아치는 호동이다.

    "여인을 탐하는 사내의 마음이란, 변하기 마련이요.
    뿌쿠는 날 죽이려 했소, 그치만 태녀는 자신의 모든것을 다 버리고 날 살리려고 했소"  (호동)


    뿌쿠 때문에 패수도 시냇물 넘듯 넘었던 옛날의 호동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동요도 없는 모습이 오히려 더 아파보였다. 비록 마음을 숨기는 법은 알았지만 그 마음을 작아지게 하는 법을 몰랐던 호동이었기 때문이다.

    호동은 2년간 뿌쿠가 왕홀의 아내가 되어있을것이란 생각에 세상의 모욕을 묵묵히 받아내며 낙랑을 칠 생각만으로 살아왔다. 그때문에 끊임없이 라희에게 애정공세를 퍼부었고,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자신을 수련하고, 결국 목숨까지 걸어 마지막 승부수인 낙랑으로의 망명까지 택했던 것이다. 왕이 되겠다는 강한 열망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컸던 것이 뿌쿠에 대한 마음이었으니, 뿌쿠를 얻기위해 그녀를 향한 마음을 숨기는 법을 터득했을지라도 그녀에대한 마음이 조금도 작아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 호동에게 뿌쿠가 왕홀의 아내가 아니란 말은 죽기보다 괴로웠던 지난 2년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수 있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영문도 모른채 뿌쿠에게 버림받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아야 했기에 죽을 만큼 미웠겠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던 뿌쿠가 왕홀과 결혼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들은 순간 어떤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된 것이다.

    때문에 호동은 낙랑에 도착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고 보다 치밀하게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성에 도착하자마자 라희를 찾을 여유를 갖을 수 있었고, 라희가 찾아왔을때 보다 애절한 진심으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추절에 혼인한다는 얘기를 듣고 더는 졸본에 있을 수 없었소
     다른 사내에게 널 보내고 심장이 터져 죽느니 라희, 널 한번더 보고 죽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호동)


    낙랑에 무슨생각으로 왔냐는 라희의 물음에대한 호동의 답이었다. 이 대답은 자명과 마지막으로 만났을때 했던 호동의 대사와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르다.

    "그럼, 넌, 나한테 죽는다. 다른 남자한테 보내느니 차라리 그게 낫겠지"   (호동)


    다른 사내에게 가야하는 라희는 한번 더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 하지만, 다른 사내에게 가야하는 자명은 죽음으로라도 함께 하고자 하는게 호동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이런 호동의 마음도 모른채 이미 다른사람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게된 불쌍한 라희공주..


    이미 사랑에 눈이멀어 나라를 팔아먹는 세상의 망할 계집이 되어버릴 준비를 마친 셈이다. 여태까지는 그저 호동의 얕은 수에 놀아나는 태녀가 마냥 철없고 바보같아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갈수록 자명에대한 마음이 깊어지는 호동을 보자 그런 호동을 믿을 수 밖에 없는, 혹은 믿고 싶었던 라희가 한없이 불쌍해 보이기 시작했다.
    호동의 마음이 자명에게 깊어질 수 록 라희의 마음 역시 그 못지 않게 깊어져갔기 때문이다. 이런 라희의 마음은 한 나라의 왕이자 태녀로써 라희를 바라봐야했던 최리대왕에게는 한없이 철없는 감정놀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라희가 이럴 수록 최리는 자명을 더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여태까지 신녀나 태사령 같은 사람들을 나라를 말아먹을 궁리만 선무당 정도라만 생각했던 최리가 신녀 자명의 말만큼은, 거대한 북이 스스로 울리다 하여도 믿겠금 하는데는 라희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다.
    그동안 딸이라고는 라희밖에 없었기에 이러니 저리니해도 팔이 안으로 굽었었다면, 자명이 나타난 지금, 뿌쿠가 자명이든 아니든 믿고싶게끔 만든것이다.

    어찌됬든 라희의 종횡무진 철없는 행동 덕분에 단시간에 여러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신녀 자명..
    사랑하는 사람들은 닮아간다고 했기 때문인지, 서로에 대한 마음이 깊었던 만큼 떨어져있어도 자꾸만 닮아가는 듯 보인다. 2년간 하랍산에서 도(?)를 닦은 그녀 역시 늘은건 마음을 숨기는일 뿐이다.
    물론 그 신공이 호동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그녀 역시 마음을 숨기는데 어느정도 달인이 된듯하다. 호동이 낙랑에 왔다는 소식에 그저 눈썹한번 찡긋하면 그뿐이고, 호동에 대한 마음을 재차 확인하며, 자신의 마음을 보란듯이 얘기하는 왕홀 대장군 앞에서도 눈썹한번 까딱하며 신녀 다운 말을 술술 내뱉을줄 알게된 것이다.

    "품성이 운명이고 선택이 운명입니다. 형수님을 죽이지 못해 혼인했던 그 성품이 오늘 대장군의 운명을 만든것입니다. 낙랑국을 위해 태녀마마와 혼인하리라 믿습니다."   (자명)


    어느새 '운명'을 들먹이며 낙랑국을 위해 왕홀에게 명령 비스무리한 것 까지 할 수 있게된 자명이다. 자명의 이 대사를 보면 언젠가 왕홀이 자명에게 했던 말과 비슷함을 알 수 있다. 호동을 죽일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하던 그날밤 왕홀 역시 운명을 들먹이며 뿌쿠에게 호동을 죽을길로 몰아 넣을 것을 강요했었다. 또한, 공주님은 낙랑국을 위해 호동을 잊고 자신의 아내가 되어줄것임을 믿는다며 자명의 선택을 강요했었다.


    33화는 알게 모르게, 그 동안 서로에게 했던 말들이 비슷한 뉘앙스와 비슷한 대사로 오고 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운명이라는 것이 누구 한사람의 잘못이거나 한사람의 선택에 의해 끝나는 것이 아님을 말하는 듯 싶었다.

    실타래 처럼 얽힌 운명은 다시한번 자명의 손에 호동의 목숨줄을 쥐어준다.


    하지만 자명 역시 2년간 마음을 숨기는 법을 터득한지라, 호동보다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호동보다는 냉정하게 그를 외면했다.

    "이 신녀 하늘의 뜻을 전하는 것은 사실이오나 어찌 감히 국정에 의견을 낼 수 있겠습니까
    제 소임은 사람을 살리는 것 입니다.

    이 몸 신녀로서도 한때 왕자를 모셨던 호의무사로서도
    호동왕자를 믿지 못합니다."       (자명)


    결국 그렇게 또 한번 호동을 사지로 몰아넣는 운명의 선택을 하고만 것이다. 호동처럼 표정까지 완벽하게, 혹은 말투까지 완벽하게 숨기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고 사랑을 외면하는 것 만큼은 호동보다 완벽했다. 자칫 감정에 휩쓸렸다면 그동안의 신뢰도, 신녀로서의 자리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기에 호동의 죽음을 택한 것이다.

    두번이나 호동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그녀의 선택은 훗날 자신의 손으로 호동을 죽여야만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선택이었을 것인지도 모른다. 어짜피 살아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하는 운명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내막을 알턱이 없는 라희는 그저 몸종에 불과한 '소소'의 말만 듣고 자명이 자신을 질투해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믿는다.


    자신의 사랑을 방해만 하는 자명이 예뻐보일 턱이 없으니, 죽어라 눈돌아갈만큼 째려본다. 호동의 사탕발림을 받아오고 그 사탕발림을 진짜 사탕이라 믿었던 라희 눈에는 호동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후 그 마지막 길을 숨어서 바라보는 자명의 모습이 자신의 추측이 확실하다고 믿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질투든 운명이든, 호동을 궁지로 몰아넣은 자명은 안타깝게 그를 바라볼 수 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직접 죽이지 않아도 됨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명이 아무리 신녀가 되었다고 하지만 신녀 역시 사람이기에, 낙랑을 위한 운명의 선택이란 핑계를 앞세워 자신의 괴로움을 덜어내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게된 것이다. 이런 사랑에 대한 이기심이 결국 호동을 스승까지 베야하는 벼랑끝으로 몰고간다. 정말이지 잔인하다고 밖에 표현될 수 없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또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베어버린 호동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스스로 벨 수 없기에 다른사람 손에 호동을 베이게 하는 자명이나, 그런 둘의 사랑도 모른채 자신의 모든것을 버리고 이용당하는 라희나... 누구 하나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너를 버릴 수는 있어도 구해줄 수 는 없다.
    고구려의 왕이 되고 싶거든 스스로 너의 목숨을 구해라"   (무휼)


    사랑하기에 운명까지 닮아버린 둘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구해야만 했고, 호동은 고구려를 베고, 스승을 베어내고 만다. 이 후 잔인한 운명은, 고구려를 베고, 스승을 베어버린 호동과 호동을 베려했던 자명을 다시 만나게 한다.



    운명은 호동이 자명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죽는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마지막까지도 서로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게끔 실타래를 엮었고, 서로의 사랑을 알면서도 칼을 겨눠야만 하는 운명의 태풍속에 둘을 가두었다.


    다시 만난 호동은 뿌쿠의 진신을 알게될 것이고, 더이상 뿌쿠와의 사랑이 자신의 노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호동에게 남은 것은 애초의 의도따위와는 상관 없게된 '낙랑' 뿐이다. 오직 호동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낙랑땅' 뿐이며, 그 땅의 왕이 되는 것 밖에는 없다.


    이제 이런 운명을 자명 뿐 아니라 호동도 알게 되었으니, 남은 6화동안 보여질 호동의 감정들이 기대된다. 결말은 이미 알고 있기에 앞으로 중심을 봐야할 관전 포인트는 '운명을 마주하게된 호동의 대처법'이라 할 수 있겠다.

    남은 3주간 이어갈 애잔한 감정선들이 얼만큼 잘 표현되느냐에 따라 '자명고'에 대한 전체적인 평이 좌우될 것이다.

    조기종영이라는 악수에 처한 상황이지만, 끝까지 흐름을 놓치지 않고 마무리 하는 것이 중요하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말처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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