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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7화에서 보다 솔직하게 들어 난 각 인물들의 속마음 덕분에 자명고38화는 여러모로 몰입될 수 밖에 없었다. 각자가 자신의 방법으로 서로를 사랑했기에, 서로의 마음을 찟게되는 안타까운 결말에 이르렀음을 보여줬던 38화였다.

    38화는 낙랑을 치겠다고 군사들 앞에서 호언장담하는 호동과, 그런 호동을 위해 칼부림을 해야했던 자명과 라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부분의 싸움 장면은 이미 1화때 공개되었던 장면이었기에 이대로 이부분이 지나가면 김빠진 콜라밖에 되지 않을텐데 어떻게하나 걱정했었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1화때는 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마음이야기는 칼부림 장면을 보다 진하게 만들어주었다.


    (자명)
    호동은 그댈 사랑하지 않아요

    (라희)
    닥쳐라

    (자명)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런짓을 시키나

    (라희)
    그리도 호동이 널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으냐

    (자명)
    왕자가 가장 사랑하는건 그의 아버지고 고구려야
    나에 대한 마음? 당신에게 느끼게될 죄책감같은거 그리 큰게 아니라고

    (라희)
    죄책감도 연민도 뜨거움도 열정도 분노도 얼음처럼 차가움도 다 사랑의 여러 모습일 뿐이야

    그동안 뿌쿠는 '자명'이란 공주의 신분을 얻었기에, 신녀라는 직위에 올랐기에 낮게 깔리다 못해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점잖게 말해왔었다. 그런 그녀의 말투가 '자명'은 이전의 '뿌쿠'와는 확연히 다른 자아를 정립하고 있음을 나타내는듯 했다. 하지만 자명의 말투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설득력도 없었을뿐 아니라 심성여린 소녀의 소리없는 아우성 같았다.

    하지만 자명고 앞에서 라희와 맞선 자명은 예전의 '뿌쿠'로 돌아와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올곧게 상대에게 찔러넣던 당찬 '뿌쿠'였다. 뿌쿠는 상대의 배경이나 지위따위는 생각하지 않은채 맑은 눈으로 상대를 투영하던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왕자'였던 호동에게도 왕의 계집이 아닌 '여자'로서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뿌쿠가 라희에게 말했다. '낙랑'이란 변명으로 사랑에 눈이먼 자신을 숨기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라희에겐 이것 또한 낙랑에 대한 사랑이었고 사랑을 택했기에 어떠한 후회도 죄책감도 그 스스로가 인정할 수 없었다. 분명 사랑에도 여러 모습있었기에 라희가 했던 모든 행동들이 호동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었고, 호동이 그녀에게 그동안 잔인할만큼 이성적으로 대했던 것 역시 사랑의 일종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라희)
    내가 낙랑국을 사랑하는 방법이 어찌 너와 같아야 하느냐
    그깟 잘란 북 하나 만들었다고 니가 나보다 낙랑국을 아낀다 짓거리지 말아라 역겹다

    (자명)
    내 어머니께 위선하는 분이라 하더냐 공주야 말로 위선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낙랑을 사랑한다고 백번 천번 말해도 내겐 거짓으로 들려 차라리 호동을 죽일 수 없다고해 

    (라희)
    그러면 안되는 것이냐? 나도 너처럼 내 마음을 저울에 달아 보았다 고구려에서부터 지금 이 시각 까지 수천번 수만번을 달아보았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낙랑국 낙랑의 백성들, 너무도 무겁다 그에 비해 호동을 달아보니 턱없이 가볍다. 헌데 말이다. 난 그 턱없이 가벼운 호동을 택하고 싶다. 그게 위선을 벗은 내 진실된 심정이야

    분명 라희와 자명은 사랑에 대한 생각도, 방식도 달랐다. 자명은 자신을 희생시키는 것을 사랑이라 여겼고 라희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한 것을 사랑이라 택했다. 둘의 사랑은 달랐기에 행동 또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 어느 쪽도 맞거나 틀리다고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어떤 방법으로 사랑했든 둘 모두가 원했던 것은 낙랑국의 안위와 행복이었다. 고구려의 막강함을 보고온 라희로서는 비록 속국이 될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갖더라도 자명고를 찟는 것이 낙랑의 백성을 덜 피흘리게 하고 아버지, 어미니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 믿을수 밖에 없었다.
    아마 자명이 라희와 같은 입장에서 고구려로 불려 갔다고 하더라도 똑같이 행동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호동에 대한 마음이 라희 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때 덜하지 못하는 자명이기에 그녀 역시 호동을 외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그녀들도 가장 기본적인 선택의 속성은 같았다. 자명과 라희 둘다 마음의 저울 중 '가벼운'것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다만 사랑의 관점이 달랐기에 낙랑국과 백성, 부모가 가벼웠던 자명은 이를 택했으며, 호동이 가벼웠던 라희는 호동을 택했다.

    두사람의 마음의 저울이 다른 까닭은 아마 무얼위해 살아왔는가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라희는 태녀가 되기위해 태어났고, 여왕이 되기 위해 살아왔다. 항상 사랑받기위해 노력했고 좋은 딸, 좋은 공주, 좋은 지도자가 되기위해 자신을 만들어왔다. 라희에게 낙랑국과 낙랑의 백성, 부모님은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반면 자명은 태어날때부터 자신이 누군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속에 살아왔다. 자신에 대한 알 수 없는 의문을 풀기위해 하루하루를 죽지 않고 버텨왔던 자명에게 호동은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되었다. 호동을 만나기 전까지 뿌쿠는 다른애들과 같이 희희낙락 기예단의 기예단원이었고, 다른애들처럼 부모가 없는 고아였고, 모두가 추측해준대로 일품의 동생일것이란 가정하에 살아왔다. 모두가 생각해준 모습을 부르기 좋게 '뿌쿠'라는 단어에 함축시켜놓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호동을 만난 '뿌쿠'는 새로운 자신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뿌쿠는 호동의 호위무사였고 호동의 친구였고 호도의 여자가 된 것이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의 자아는, '누구누구의 자식'으로 부터 시작된다. 자아라는 자체가 근본인 뿌리를 뜻하는 것임으로 자아를 찾고 싶어하던 뿌쿠 역시 근본 뿌리인 부모를 찾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런 뿌쿠에게 '호동의'라는 강한 네임택을 붙여준 호동이었기에 호동은 자명 그 자신이었다.

    라희와 뿌쿠가 이런 또다른 자신을 택하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것들을 선택했던 이유는, 책임질 수 있는 것을 선택하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둘중 어느 한쪽을 택하더라도 행복할 수 만은 없는 운명이기에 자신이 덜 다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자명)
    그대와 나를 봐. 형제 자매도 위 아래가 있듯 고구려는 명료하고 낙랑이 복중하는 체제겠지
     그게 어떻게 형제국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해!

    (라희)
    이것만은 알아둬, 너만 낙랑을 사랑하는게 아니야
    나 역시 나 역시 낙랑을 사랑해서 고구려의 속국으로라도 살려두려는 거다

    자명에 말에 순간 움찔하는 라희였다. 아마 라희도 어렴풋이 알고있었을 것이다. 결코 낙랑과 고구려는 형제국가가 될 수 없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백년만년 낙랑이 고구려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하지 못할 것 역시 직감하고 있던 라희였기에 위험성을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불안함을 호동에 대한 사랑의 믿음으로 달래며 어려운 결정을 했던 것이다.

    어쩌면 라희가 자명보다 훨씬 이성적인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자명은 그저 신당에 앉아 미래를 논하는 탁상론자였다면 라희는 최전방에서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 모든 모습을 직접 느끼고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희의 결정에 '호동'이란 콩깍지가 끼여있던것은 사실이지만 그녀의 선택이 오직 호동에 대한 맹신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 이해할 수 있기때문에 자명과의 대화속에서 낙랑을 진심으로 생각했던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라희의 진심이 전해졌기에 38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지 않았나 싶다.

    (자명)
    끝이다.

    (라희)
    너 진심으로 호동이 죽길 바라는 거니? 넌 그가 죽어도 살 수 있겠니?

    바늘끝에 독은 몰라도 그 독은 피할 수 없을게다
    너의 죄가 뭔줄 알아?
    너만을 바라보던 호동을 나 혼자 지켜봐야겠지 내 자존심을 갈기 갈기 찟어 버린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늘 그랬듯 자명은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이 약해진다. 호동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도 결정적인 순간에 마지막 한방을 휘두르지 못하는 그녀이다. 그래서 늘 자명은 등에 칼을 맞는다.


    자명이 순간 정신이 흔들렸을때 그 이유가 호동때문에 마음이 약해진 것인지 독이 심해져 정신이 흔들렸던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여림'이 어쩜 라희의 눈에는 '위선'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항상 하고싶은걸 하며 솔찍함이 매력이었던 라희였기에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아닌척, 모든 슬픔과 희생은 자신의 몫인 척 하는 자명이 밉상이었을 것이다.

    어쨋든 이리하여 자명고는 찟기게 된다.

    신물이라 했던 자명고 속에서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박쥐를 보며 허탈해하는 라희의 표정은 알 수 없는 억울함으로 휩쌓여보였다.


    이렇게 두 자매가 칼부림을 하고 있을때, 고구려 진영에서는 두 부자가 칼부림을 버리고 있었다. 이들 역시 자명고 때문이다. 태녀가 자명고를 찟겠다는 빌미로 군사들을 이끌고자하는 호동이었기에 그의 목숨은 자명고 조각에 달려있었다. 하지만 약소된 시간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렸고 자명고 조각은 오지 않았다.
    이에 무휼은 호동의 목숨으로서 사태의 책임을 질것을 명한다. 과연 무휼다운 선택이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낙랑을 칠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기에, 낙랑으로 가는데 있어 호동의 목숨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취하고자 하는 '그' 였다.


    (호동)
    소자 언젠간 죽겠지만 오늘 이자리는 아닙니다

    (무휼)
    비굴한놈, 이 대무신 무휼의 아들이 죽음을 두려워 하느냐
    그래서 네놈이 부여의 피를 반이나 받았다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호동)
    저는 삼촌들과는 다릅니다.
    아버님은 징그럽다 끔찍하다 하시면서도 할아버지를 꼭 닮으셨으나 저는 삼촌들을 따라하지 않아요!
    쓸데 없는 개죽음은 하지 않겠습니다.

    (무휼)
    네 놈은 치욕이 뭔지 모르는 모양이나만 난 참을 수 가 없다 내가 보내 주마

    (호동)
    죽지 않겠습니다 아니 죽는게 억울하고 분해서 저는 결코 아버님 손에 죽을 수 없습니다

    (무휼)
    받아 들여라 대 고구려를 위해서 네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무휼은 아버지였던 동명성왕이 자신의 형제들을 죽이는 모습을 보며 자라왔기에 형제들간의 왕권다툼을 끔찍이도 징그러워했다. 때문에 그 오랜시간동안 송매설수를 외면해왔고 호동에게 안정된 왕위를 물려주고자 했다. 하지만 막상 또 다른 아들이 생기자 무휼의 태도는 점차 변해갔다. 본디 근본이 잔인한 자신과는 다르게 여리고 따뜻했던 호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무휼에게는 해애우가 어떤 불만의 표출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자신에게 걸림돌이 되는 아들에게는 죽으라는 명령까지 내리는 무휼과 그의 형제들을 죽였던 동명성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지만 호동왕자 역시 이번만큼은 참지 않았다. 지난 수년간, 오직 아버지에게 낙랑땅을 자신의 손으로 받치기 위해, 혹은 뿌쿠를 되찾기위에 얼마나 많은 설움과 고통들을 견뎌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냉담함도 참았었고 백성들의 손가락질, 궁의 모든 이들의 모욕도 다 참아왔지만 뿌쿠를 갖을 수 있는 마지막 걸음을 남겨둔채 포기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호동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호동은 무훌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실수를 하고만다. 사실 이 장면은 왜들어 간건지 애매해지는 부분이었다. 왕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것은 반혁죄로 다스려질법한 일인데, 게다가 다른 왕도 아닌 폭군에 가까운 무휼의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타이밍 좋게 우나루 대장군이 들어와 군사들의 이동을 알리는 바람에 우물쭈물해졌지만 이후에도 어떠한 죄도 묻지 않으니 뭔가 아쉬웠다. 분명 좀더 치열하게 아들과 아버지의 대립을 그릴 수 있는 요소였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 갔기 때문이다.


    어쨋든 무휼과 군사들의 우려와는 달리 라희는 자명고 조각을 보내오고 이에 본격적인 낙랑 침공에 돌입한다.

    이때 가장 주목할만한 것은 라희와 원후, 차후의 모습이었다. 자명고가 찟겼단 소식을 듣자 모든 이들은 거의 동시에 범인이 누구인지를 짐작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가장먼저 라희의 방으로 뛰어간 사람은 차후인 왕자실이었다.

    (라희)
    어머니가 그러셨죠? 죽이고 싶을만큼 미운 인간이 있는데 어찌 죽을 만큼 사랑을 하냐고

    (왕자실)
    나라를 기울게 한다는 계집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봤다만 사내놈 하나때문에 나라를 말아 먹으려 드는 태녀가 있을줄을 몰랐다 그게 내딸일 줄이야

    (라희)
    대체 언제 부터 자명이를 걱정하셨죠?

    (왕자실)
    태녀자릴 위협하는 자명인 적이지만 낙랑의 신녀로 자명고를 만든 자명인 네게 도움이 되는 존재다 질투에 눈이 멀어 것도 몰랐느냐

    왕자실의 말을 통해 그간 왕자실이 해왔던 행동들이 절대악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왕자실이야 말로 한평생을 딸을위해 살아온 것이다. 오직 자신의 딸이 태녀이자 왕녀가 되게 하기위해 그간 어떤 악행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랑에 목적이 이었던 만큼 자신의 기대를 저버린 딸의 행동에 원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때문에 라희의 대답을 듣자 손부터 올라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왕자실의 태도와는 확실히 대비되는 원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딸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침착한 모습을 보이는 원후 였다.

    (원후)
    태녀는 갑옷을 입어라 어서 갑옷을 입고 폐하를 따리지 않고 뭐하느냐

    (라희)
    싫습니다. 차라리 자명이를 죽인 죄를 물어 저더러 죽으라고 하십시오

    (원후)
    라희야, 라희야 네가 어쩌자고 네가 어쩌자고 이렇게 까지 망가 졌느냐

    (라희)
    자명일 미워했어요, 죽이고도 싶었어요 헌데 정말로 죽이게 될줄은 몰랐어요

    (원후)
    갑옷이 입기 싫으면 옷을 챙겨라, 낙랑이 이기면 아버지 손에 낙랑이 지면 성난 백성들 손에 넌 죽는다. 실덕하여 나라를 뺏긴 태녀는 돌에 맞아 죽어도 할말이 없는 법이다. 엄만 그걸 볼 수 가 없구나, 아직은 배편이 끊어지지 않았다 전쟁을 피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하녀들 틈에 같이 동무현으로 가거라

    엄만 내딸이 죽는걸 볼 수가 없다. 자명이도 너도 둘중에 그 어느 누구도 엄마보다 앞서 죽는걸 볼수가 없어 어서 짐을 꾸려라

    죄를 묻지 않는 원후에게 라희는 변명할 기회조차 갖을 수 없었다. 차리리 자신을 원망하고 화를내는 엄마였다면 자신도 그럴 수 밖에 없었음을 하소연하고 왜 자명이만 사랑했느냐고 따질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이 조차 할 수 없게된 라희는 원후의 사랑에 죄송한 마음으로 뼈가 시릴정도로 아파해야했다. 

    과연 원후로서의 모습이자 진심으로 딸을 사랑하는 어미로서의 모습이었다. 자명고를 봐오는 내내 원후의 사랑에 대해 여러 생각을 했었다. 친 딸이 아닌 라희를 정말 친딸처럼 생각하고 키운다는 것이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위선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분명 라희는 그냥 딸이 아닌 친딸을 죽인 원수, 왕자실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명이 살아있다는 것을 모를때까지는 자명이려니 생각하고 사랑한다고 이해할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자명이 살아서 나타나고 그런 자명을 미워하는 라희를 보고도 원후는 라희를 이전과 다를것 없이 사랑했다. 또한 자명을 사지로 몰아넣은 지금 이 순간에도 라희를 친딸로서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아무리 천성이 착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동안은 원후는 한없이 여리고 착한 사람으로만, 왕자실은 독하고 강인한 모습으로만 비춰졌던 것에 비해 막상 나라가 멸망에 이르르니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왕자실은 감성적으로 행동하며 신세를 한탄하는 것에 비해 원후는 듬직한 모습으로 한 나라의 어머니로서 마지막을 굳건히 지켰기 때문이다. 그동안 착하게만 행동했던 원후가 어리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왕자실의 꾀에 당해준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최리)
    내 딸 라희에게서 태녀의 위를 박탈한다 백성들이 너를 단죄하거든 겸허이 받아 드리라

    (라희)
    백성을 살려한 제 마음을 어찌 믿어 주지 않으려하나이까

    (최리)
    허나 할 수 만 있다면 호동의 아내로 살아남아 낙랑의 백성이 노예가 되는 것을 온 힘을 쏟아 막고 대장군을 도우라

    왕으로서의 최리도 마지막까지 굳건함을 보여주었기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끝까지 지혜로운 왕, 인자한 왕으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보여주는 바였다.

    낙랑은 결국 고구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고, 예상대로 대무신왕은 라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고구려의 왕 입장에서는 그리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칫 형제국으로 받아주었다가는 몇십년 내에 낙랑에게 되려 먹혀버릴 이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희와 호동은 이런 무휼이 그저 야속하고 이기적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호동은 이런 무휼의 모습에 화가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영락없는 고구려의 왕자로서 행동했다. 이럴때 보면 호동이 무휼의 아들이 맞음을 실감할 수 있다.

    (최리)
    고구려의 왕자가 창가의 계집처럼 내 딸라희한테 몸을 팔아 낙랑을 화대로 받았더냐

    (호동)
    본시 왕이랑 창부와 다를바 없지요.
    백성의 비위를 맞추고 대소 관료들의 비위를 맞추고 몸을 파는 대시 그저 이 머리를 파는게 다를까

    낙랑을 갖기 위해서라면 라희가 아니라 돼지한테라도 나를 팔았을 테지만 어쨋든 사죄 드립니다.
    정말이지 멋졌다!!!! >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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